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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대학 새소식
1921년 여름.
모든 준비가 끝났습니다.
호주 장로교회는 장학금을 마련했고,
일본 식민당국은 출국을 허가했습니다.
호주 정부 역시 김호열의 입국을 승인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단 하나.
떠나는 일이었습니다.
오늘날 한국에서 호주까지는
비행기로 약 10시간.
하지만 100년 전에는 전혀 달랐습니다.
김호열 앞에 놓인 길은
비행기가 아니라
배였습니다.
그리고 그 여정은 무려 42일이 걸렸습니다.
김호열은
부산항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일본 고베를 거쳐,
다시 홍콩으로 향했습니다.
그 후 남쪽 바다를 계속 내려가
마침내 호주 북쪽의 Thursday Island에 도착합니다.
생각해 보면,
김호열은 그때 겨우 스무 살이었습니다.
지금처럼 인터넷도,
휴대전화도,
비행기도 없던 시대.
한 번 배를 타고 떠나면
가족과 연락하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그가 바라본 바다는
지금 우리가 여행에서 보는 바다와는 전혀 다른 의미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호주 땅을 처음 밟았다고 해서
여정이 끝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Thursday Island는
김호열이 처음 도착한 호주의 관문이었습니다.
그는 다시 배를 타고
브리즈번으로 향합니다.
브리즈번에서는
한 사람이 김호열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Frances Louisa Clerke.
한국에서 선교 활동을 하던 호주 선교사였습니다.
당시 휴가를 맞아 호주로 돌아오던 그녀는
브리즈번에서 김호열과 합류해
멜버른까지 함께 이동했습니다.
낯선 나라에서
익숙한 얼굴을 만난다는 것은
얼마나 큰 위안이었을까요.
그리고
1921년 9월 19일.
김호열은 마침내
멜버른에 도착합니다.
42일.
부산에서 시작된 긴 여정이
드디어 끝난 순간이었습니다.
진짜 이야기는 이제부터였습니다.
김호열은 백호주의 호주의 국경을 통과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입국 심사 과정에서 호주 관리들은
김호열을 보며 혼란스러워하기 시작합니다.
그의 국적은 무엇일까?
한국인일까?
일본인일까?
그 혼란은 지금도 한 장의 행정문서에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김호열이 작성한 호주 입국 서류에는
분명 "Corean"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그 옆에
빨간 글씨로 "Japanese"라고 덧써 놓았습니다.
한 장의 서류에 남겨진 작은 메모.
그 메모는 식민지 시대 한국인이 어떤 존재였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호주 입국 심사 문서 속에 남아 있는 김호열의 흔적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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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 여름.
모든 준비가 끝났습니다.
호주 장로교회는 장학금을 마련했고,
일본 식민당국은 출국을 허가했습니다.
호주 정부 역시 김호열의 입국을 승인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단 하나.
떠나는 일이었습니다.
오늘날 한국에서 호주까지는
비행기로 약 10시간.
하지만 100년 전에는 전혀 달랐습니다.
김호열 앞에 놓인 길은
비행기가 아니라
배였습니다.
그리고 그 여정은 무려 42일이 걸렸습니다.
김호열은
부산항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일본 고베를 거쳐,
다시 홍콩으로 향했습니다.
그 후 남쪽 바다를 계속 내려가
마침내 호주 북쪽의 Thursday Island에 도착합니다.
생각해 보면,
김호열은 그때 겨우 스무 살이었습니다.
지금처럼 인터넷도,
휴대전화도,
비행기도 없던 시대.
한 번 배를 타고 떠나면
가족과 연락하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그가 바라본 바다는
지금 우리가 여행에서 보는 바다와는 전혀 다른 의미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호주 땅을 처음 밟았다고 해서
여정이 끝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Thursday Island는
김호열이 처음 도착한 호주의 관문이었습니다.
그는 다시 배를 타고
브리즈번으로 향합니다.
브리즈번에서는
한 사람이 김호열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Frances Louisa Clerke.
한국에서 선교 활동을 하던 호주 선교사였습니다.
당시 휴가를 맞아 호주로 돌아오던 그녀는
브리즈번에서 김호열과 합류해
멜버른까지 함께 이동했습니다.
낯선 나라에서
익숙한 얼굴을 만난다는 것은
얼마나 큰 위안이었을까요.
그리고
1921년 9월 19일.
김호열은 마침내
멜버른에 도착합니다.
42일.
부산에서 시작된 긴 여정이
드디어 끝난 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진짜 이야기는 이제부터였습니다.
김호열은 백호주의 호주의 국경을 통과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입국 심사 과정에서 호주 관리들은
김호열을 보며 혼란스러워하기 시작합니다.
그의 국적은 무엇일까?
한국인일까?
일본인일까?
그 혼란은 지금도 한 장의 행정문서에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김호열이 작성한 호주 입국 서류에는
분명 "Corean"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그 옆에
빨간 글씨로 "Japanese"라고 덧써 놓았습니다.
한 장의 서류에 남겨진 작은 메모.
그 메모는 식민지 시대 한국인이 어떤 존재였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호주 입국 심사 문서 속에 남아 있는 김호열의 흔적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